언론보도

제목 "지금 이 땅엔 미래는 없고 과거만 존재" 한국미래학회 창립 주역 최정호 명예회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17

한국미래학회 50년… 창립 주역 최정호

1968년 한국 사회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예측하고 구상하는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의 연구 모임으로 출범한 '한국미래학회'(회장 김성호 연세대 교수)의 창립 50주년 행사가 16일 서울 광화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렸다. 미래학회는 이한빈(1926~2004)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학자·언론인·기업인·법조인 등 29명이 '한국 2000년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이래 한국의 산업화·민주화·세계화 흐름을 선도하는 연구·토론·저술 활동을 벌여왔다. 한국미래학회 창립 발기인이자 제2대 회장을 지낸 최정호(85) 전 연세대 교수는 '한국미래학회 50년, 대한민국 100년'이라는 기념 강연과 보충 인터뷰를 통해 미래학회 창립 주역들의 문제의식을 부연하고 현재 한국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공공 지식인들의 과제를 제시했다.

최정호 교수는 “과거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정체성의 정치’가 조선시대 내내 우리를 괴롭혔는데 또다시 돌아온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다.
최정호 교수는 “과거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정체성의 정치’가 조선시대 내내 우리를 괴롭혔는데 또다시 돌아온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최정호 교수는 "미래 예측이라면 정감록(鄭鑑錄)이나 무당들의 세계로 생각하던 시절에 미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모임이 만들어진 것도 이례적이었고 전공과 활동 분야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것도 드문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왜 1960년대 후반이었을까? 최 교수는 "2차 대전 종전 후 이념의 동서 냉전이 중심이던 세계사의 축(軸)이 1960년대 들어 아시아·아프리카의 신생 국가들이 부상하면서 빈부의 남북 갈등으로 옮겨왔다"며 "당시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엘리트에게 가난하고 개발되지 못한 과거는 무(無)요, 미래가 전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조국 근대화'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과거는 잊고 현재의 고통은 참고 일하는 것이 후진국의 미래학이었고, 따라서 발전학(developmentology)이 곧 미래학이었던 것이다. 한국미래학회는 197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공동으로 2000년 한국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작업에 착수했고, 학회지 '미래를 묻는다'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 모습을 다양하게 전망했다.

하지만 미래학회는 유신 체제에서 부상했던 관변 미래학과 달리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밝은 측면뿐 아니라 어두운 측면도 조명했다. '발전과 갈등' '산업화와 인간화' '경제성장을 넘어서' '삶의 질' 등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미래학회는 미국이나 일본의 미래학회와는 달리 경제·과학 분야 못지않게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회원이 많았기 때문에 가치지향적·비판적 논의를 통해 종합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한국미래학을 주도했던 최정호 교수는 "현재 이 땅엔 미래는 없고 과거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미래를 잃게 되면 과거를 파고든다"며 "지금 한국처럼 정치·경제·문화 심지어 사법까지 모든 분야에서 오직 과거의 문제만 파헤치는 사례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 사회의 현대사 인식 혼란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미래에 대해선 다양한 경륜이 활발하게 논쟁해도 과거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 건전한 국가 공동체인 '공화국'의 기본 전제"라고 지적했다. 서독은 1945년 이후 현대사를 정치 교육의 핵심으로 설정해서 나치스 체제와 동독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비판에 국가적 역량을 기울였다. 반면 지금 한국은 현대사 인식이 몇 개로 갈라져서 우리 자신이 누구의 후손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최정호 교수는 "세상이 온통 과거에만 몰두해도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는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미래학회 후배들에게 대한민국 100년을 맞는 '2048년의 한국'을 종합 예측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최 교수는 "인구, 경제 발전, 에너지 문제 등을 큰 안목에서 봐야 하고 이를 위해선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8/11/19

이선민 선임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9/2018111900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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