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한국미래학회’’로 학회명칭 개칭.
8월학회 연구 활동의 기본적 틀이 된 월례회를 처음으로 개최 [아카데미 하우스]. 월례회는 주로 은행집회소,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진행. 첫 월례회에서 발표된 연구는 김학소(건설부), "우리나라 국토개발의 미래상,” 유동식(연세대), “신학분야에서 본 미래 문제,” 조가경(서울대), “최근 북미에 있어서의 미래문제 연구의 동향."
7월"한국 2000년회” 발족 [아카데미 하우스]. 창립 당시 정회원 28인, 명예회원 1인(박종홍). 명단은 역대회원 명단 참조.
5월최정호 이한빈 재회, 유럽에서 구상한 미래연구 모임을 시작하기로 결의. 회원 인선에 착수. 학회 창립발기인으로 권태준, 김경동, 이한빈, 이헌조, 전정구, 최정호를 선정.
1965년
12월스위스 대사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학자/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이한빈은 한국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작은 나라가 사는 길 - 스위스의 경우』(이한빈 저, 동아출판사)를 간행.
1964년
222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이한빈(스위스/오스트리아 대사)과 최정호(한국일보 특파원)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거듭된 만남과 서신 왕복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연구해보는 지식인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싹틔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