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연혁

1960年代 한국 미래연구의 태동

  • 1968년
  • 10월“한국미래학회’’로 학회명칭 개칭.
    8월학회 연구 활동의 기본적 틀이 된 월례회를 처음으로 개최 [아카데미 하우스]. 월례회는 주로 은행집회소,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진행. 첫 월례회에서 발표된 연구는 김학소(건설부), "우리나라 국토개발의 미래상,” 유동식(연세대), “신학분야에서 본 미래 문제,” 조가경(서울대), “최근 북미에 있어서의 미래문제 연구의 동향."
    7월"한국 2000년회” 발족 [아카데미 하우스]. 창립 당시 정회원 28인, 명예회원 1인(박종홍). 명단은 역대회원 명단 참조.
    5월최정호 이한빈 재회, 유럽에서 구상한 미래연구 모임을 시작하기로 결의. 회원 인선에 착수. 학회 창립발기인으로 권태준, 김경동, 이한빈, 이헌조, 전정구, 최정호를 선정.
  • 1965년
  • 12월스위스 대사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학자/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이한빈은 한국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작은 나라가 사는 길 - 스위스의 경우』(이한빈 저, 동아출판사)를 간행.
  • 1964년
  • 222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이한빈(스위스/오스트리아 대사)과 최정호(한국일보 특파원)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거듭된 만남과 서신 왕복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연구해보는 지식인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싹틔우다.